[조재길의 경제산책] 핵폐기물 포화 위기와 원전 점검 강화의 수상한 관계

입력 2020-02-14 10:59   수정 2020-02-14 13:45


주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이윤석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대변인(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이 지난 11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증설(7기)하지 못해 내년 말이면 월성 원전을 올스톱해야 할 위기라는 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이죠. 작년 말 기준 원전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율은 94.2%입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정부 연구용역 결과(2018년 말 기준)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맥스터는 2021년 11월 꽉 찰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핵폐기물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원전을 모두 세우는 방법밖에 없지요. 평균 건설기간이 19개월 걸리는 맥스터 증설 공사를 오는 4월 내 착공하지 못할 경우 내년 말 ‘원전 올스톱’이란 탈원전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겁니다.

주민 의견수렴 등 공론화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게 정부 설명이지만, 항간에선 “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일부러 맥스터 증설을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국민 여론’에 맡기자는 뜻으로, 2018년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만들었습니다.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한 건 작년입니다. 이 재검토위의 여러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짓지 못하는 것이죠.

예컨대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면 저장시설 건설이 쉽지 않습니다. 전체 전력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수급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더구나 원전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기저 발전’이지요.

재검토위의 이 대변인은 “여러 걱정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나, 일단 맥스터 증설을 위한 시간은 4개월가량 더 벌어놓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 배경은 월성 3호기의 가동 중단입니다. 중수로형인 월성 원전의 경우 1970년대부터 캐나다 기술로 도입됐는데, 영구정지 처분 된 1호기를 제외하고 2~4호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중 3호기가 작년 9월부터 45일간 예방점검에 들어갔다가 ‘기술 이상’이 발견돼 장기 점검으로 전환됐다는 것이죠. 월성 3호기는 오는 5월은 돼야 재가동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월성 3호기에서 발견했다는 결함은 ‘습분 분리기’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습분 분리기는 원전의 전기 발생기 내 수분 발생을 막아주는 장치로 수리 기간이 꽤 길어질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한달 반이면 정기 점검이 끝나는데, 우연치 않게 월성 3호기의 기계 이상이 발견되면서 점검 기간이 8개월로 길어졌고, 결과적으로 맥스터 증설 공론화를 위한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겁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이 당초 내년 11월에서 2022년 3월로 바뀌게 된 것이죠.

정부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는 4월 총선 이전에 급하게 지역 여론을 수렴하고 공론화를 추진해야 할 부담을 덜게 됐습니다.

‘원전 올스톱’을 막기 위한 맥스터 증설 착공의 마지노선이 오는 8월로 늦춰졌지만 그때까지 주민의견 수렴 및 공론화를 모두 끝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탈핵단체 등의 조직적인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다만 이 대변인은 “우리도 공론화 작업이 무한정 늦어질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올해 8월까지도 착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원전업계에선 “월성 원전의 안전점검을 대폭 강화해 사용후핵연료 배출을 최대한 늦추는 꼼수를 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월성 3호기 사례처럼,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원전의 점검·정비 기간을 길게 가져가면 핵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하고 맥스터 완공 시점도 늦출 수 있다는 것이죠. 기우(憂)이길 바랍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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